'적과 흑'을 읽고
- 네이버 블로그/독서노트
- 2020. 4. 16. 17:53
'적과 흑'을 읽고
처음에 이 책을 읽기로 작정했을 때는, 이 두꺼운 소설을 언제 다 읽을까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이만한 작품은 드물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이외의 다른 소설로는 지금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지 않을까 느끼기까지 한다.
책을 다 읽고도 적과 흑이라는 제목이 무슨 의미를 뜻하는지 몰랐는데 뒤에 작자가 친히 해석해 놓은 걸 보고 대강 이해했다. 적은 군복, 흑은 승려복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이 쓰여진 당시의 시대를 풍자하는 내용임을 읽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줄리앙이 프랑스의 한 시골에서 성장하다가 그 뛰어난 자질로 파리에서 살게되면서 어떻게 사회를 풍자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그러면서도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 그런 풍조... 계급주의, 귀족들의 허례허식들 이런 내용이 다시 한번 머리속에 되새겨졌다. 그에 비해 대조되는, 비교적 가난하지만 진심이 통하고 서로를 위해 목숨도 내 걸수 있는 그런 프랑스 시골사람들의 마음 또한 떠올랐다.
550페이지 가량 되는 이 책을 그래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줄리앙이 경험한 2번에 걸친 사회 풍조에 어긋나는 정렬적인 사랑의 여정 때문이었다고 본다. 레날 시장의 저택에 가정교사로 지내게 되면서 그 깨끗하고 흰 외모로 레날 부인의 마음을 차지하여 그녀와의 첫사랑에 눈을 뜨고, 이후 파리로 옮겨 가게 되서는 귀족의 자존심을 가진, 머리로 사랑을 하는 후작의 딸 마틸드의 마음 또한 얻기에 이른다. 난 이 책에서 묘사한 두 여자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은근히 줄리앙의 그런 능력을 시샘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을 모조리 라틴어로 암기하고,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던 그의 선천적 재능을 나도 가졌으면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평민의 아들로서 귀족인 마틸드의 마음을 얻는 과정에서 자존심의 상처를 입고, 자신을 가슴으로 사랑했던 레날 부인에게 다시 안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마틸드는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자를 사랑하기 위해서 용기가 필요했고 줄리앙이 여자의 마음을 좌지우지할 비법을 배우기 전까지 계급과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변덕스런 마음을 보여주었다.
줄리앙은 결국 사형당하였지만 두 여자의 사랑을 차지하였다는 점이 무엇보다 인상깊게 남는다. 그 시대의 여성들은 우선 줄리앙의 외모, 그리고 굴욕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 또한 타고난 명석함에 반해버린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마틸드가 평민인 줄리앙을 좋아하는게 꺼림칙하면서도 그것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그러한 모습이 한 몫을 했다. 소설 속에서도 마틸드가 비록 줄리앙이 낮은 신분이지만 훗날 크게 될 사람이라고 종종 인정하는 모습을 써 놓았다. 나도 박학다식해져서 내 생각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 속 주인공이 그런 점을 가지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난 줄리앙 같은 자존심 강한 사람은 아니라서 그렇게 극단적이거나 과감한 행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
자칫 지루해 질 수도 있는 소설이었지만 조금만 꾸준히 읽어나가다 보면 이내 소설의 문체와 내용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단면을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어서 좋았고, 소설 속 문체가 고상하면서도 줄줄히 길게 나열되어 약간 뜬구름 잡는 것이 내게 아직도 여운으로 남아 있다. 모든 것을 말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말한 것 같지 않은 그런 언변의 화려함을 떠올리면서 나도 그러한 화법을 구사할 지식과 머리를 가지길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 지금도 다를 바 없는 것(국가를 초월하여)을 다시 확실히 본 것이 있다면, 역시 남녀간 밀당은 예전부터 존재했었구나.. 이런 거? 또한 줄리앙이 배운 여자 다루는 기술, 그거 참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겠다라는 걸 알게 해 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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